이뜨레의 사회적기업 현장 고민하기 ① ‘진짜배기를 찍어내는 법’

안녕하세요! 원더스의 이뜨레입니다.
저는 몽골 사회적기업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겪었던 경영의 이슈와 고민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어디 내놓기에는 짧고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비슷한 일에 관심이 있는 여러 분들에게 유익한 고민의 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연재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진짜배기를 찍어내는 법 – 스케일업과 진정성에 대하여
  2. 퍼주면 안 되는 이유, 퍼줘야 되는 경우 – 시장 질서와 보조금에 대하여
  3. ‘부자가 돼버렸지 뭐야!’ – 사회적기업의 적정 수익에 대하여
  4. 대한민국과 새마을운동 –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대하여
  5. 삶과 죽음 앞에서 – 소셜 미션과 기업의 생존에 대하여
    (바뀔 가능성 아주 높음)

몽골 이야기가 종종 등장할 예정입니다

진짜배기를 찍어내는 법
– 스케일업과 진정성에 대하여 –

기초부터 출발해보겠습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비용을 스스로 버는 조직입니다. 일반 정부기관, 복지기관, NGO들은 모든 활동비를 외부에서 수혈받아야 돌아가는 것에 비해, 사회적기업은 스스로 운영비용을 마련하는 ‘비용효율적인 조직형태’인 것입니다. 연료가 필요 없는 자동차 같은 거지요. 초기 투자금은 필요합니다만, 후원금이나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들이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적기업이 태생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려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돈도 벌고 선한 일도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모든 사회적기업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기업, 즉 한 쪽의 족쇄를 차고 있지 않은 보통의 영리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제품 잘 만드랴, 홍보해서 손님들 유인하랴, 직원들 월급 지급하랴, 월세 내랴, 하나하나가 도전이기에 운영이 안 돼서 폐업하는 기업도 부지기수입니다. 만약 사회적기업이 유능한 경영자를 만나서 이 단계까지 성공적으로 해내더라도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는 것입니다. 마치 격렬한 춤을 추는 동시에 노래까지 잘 불러야 아이돌이 되듯, 사회적기업은 돈을 벌면서 사회적 가치 또한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돌 데뷔만큼이나 어려운 사회적기업하기

사회적기업은 비영리조직이나 공공기관에 비해 더 절박하게 운영되기 마련입니다. 성과의 책임이 고스란히 조직의 존폐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위기감, 절박감을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과주의, 비용 절감, 표준화, 공정 혁신. 이런 영리기업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본디 비영리기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사회적기업에는 적용이 가능합니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더 나아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가 중에 성장이나 성과주의와 같은 말에 생리적 반감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횡포에 맞서서 약자를 보호한다거나, 사람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 등을 사명으로 갖고 있다면, 성과로 사람을 재단하고 조직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가치를 견지하면서 임팩트를 확장할 수 있을까요? 파급력은 넓히되 본질적 가치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치에 몰두하다보면 자칫 세상과 떨어져서 산골의 선비처럼 홀로 고고하게 지내게 될 수 있습니다. 독야청청 선비의 삶도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사회적기업이 감당해야 할 역할은 사회 가운데로 뛰어들어서 치열하게 씨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혼자 도를 닦는 삶도 나쁘진 않다

진정성과 스케일업이 부딪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단어에 한 번 주목해봅시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유명한 핀 공장 일화에서, 핀을 혼자서 만들면 하루에 20개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열 명이 분업해서 만들면 인당 4,8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케일업을 통한 월등한 생산성이 기업이 탄생한 이유였습니다. 인류가 가내 수공업에서 벗어나 기업을 통한 효율적인 생산을 시작한 이래,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사회적기업이야말로 스케일업이 절실히 필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이 갖는 효용은 사회적기업 솔루션의 도달범위와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도달범위를 확장시키는 스케일업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초기 시작은 가내수공업과 같은 형태이더라도, 생산량이나 서비스의 확대를 해야 더 많은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제가 일한 곳은 G-saver라는 난방 기구를 생산하는 몽골의 사회적기업이었습니다. 몽골은 추운 국가이기 때문에 겨울철 가계소득의 상당부분을 석탄 구입에 사용합니다. 가난한 가정의 경우 난방비가 총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합니다. 저희가 생산한 제품은 석탄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장비였습니다. 수만 가구의 석탄 소비를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빈곤 감소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 질 개선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울란바타르는 세계 제2의 대기오염 도시로 꼽힐 정도로 공기 질이 안 좋은데, 매연 발생을 많이 줄일 수 있어서 호흡기 질환 감소에 공헌한 것으로 추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임팩트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스케일업에 노력을 크게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2013년 당시 현지에는 한국인 관리자 한 명과 약 10명의 몽골 직원이 있었는데, 한 명의 추가 한국인 인력을 다른 역할이 아닌 연구개발직으로 뽑는 나름의 용단을 내리면서 제가 파견되었습니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 제품 개량과 공정 개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제품은 개선할 사항들이 몇 개 있었으며, 제품의 원가를 낮춰 생산비용을 절감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제품 개량 결과 난방효율이 증대되었으며, 제품 무게의 4분의 3을 줄이고, 생산 공정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사용상의 불편사항들도 개선됐습니다. 제품의 가치는 높이고 비용이 낮아졌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생산 공정의 단축입니다. 생산 능력의 증대는 비용 절감과 생산량 증가로 연결됩니다. 생산과 보급이 수 배 늘어남에 따라,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임팩트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성과 스케일업이 부딪히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제품의 소재를 고르는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생산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소재의 가격이 높을수록 불리합니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스케일업을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가격대의 소재를 사용해야합니다. 그렇지만 난방기구의 손상은 화재나 일산화탄소 누출과 같은 위험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품의 내열성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케일업을 한다는 핑계 아래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진정성을 타협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全기자의 영화 속 로봇②] 로봇 3원칙에 대한 고민… '아이로봇' : 동아사이언스

찍어낼 거라면 진짜배기를 찍어내라

한 번은 사고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시장에 화력이 좋은 신형난로가 풀렸는데, 높은 화력 때문에 그 난로에 연결된 저희 제품의 내부가 녹아버린 것입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였습니다.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혹시라도 배기구가 막혀서 가스가 집안으로 역류한다면…? 사람을 살리려는 G-saver가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즉시 해당 신형 난로에 G-saver를 사용하고 있는 수백 가정을 전수조사하였습니다. 조사가 마쳐질 때까지 2주간 공장과 사무실의 모든 운영이 중지되었고, 전직원은 가정 방문을 다녔습니다. 조사 결과 안전사고의 소지가 보이는 가정은 한 곳도 나오지 않았고, 사고 났던 가정이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불을 지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뜻하지 않게 좋은 영향을 불러왔습니다. 직원들이 마음 무장을 단단히 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업무를 2주간 일시중지하면서 생산과 보급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왔지만, 오히려 제품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다는 가치의 실현이 생산량 달성이나 이익 실현보다 앞선다는 사실이 마음에 강하게 새겨져서, 이후 각자의 업무태도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2주간 근무 올스톱은 경영자로서는 낙제점입니다만 사회적기업가로서는 괜찮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G-saver는 이후 3년간 약 7만 가구에 보급되었습니다.

규모의 성장을 이루되 본질적인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아마 둘 중에 하나를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것입니다. 효율성과 진정성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한 가지 목표만 추구하면 좋은 사회적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기업은 가치지향적이되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가장 진심에 가까운 솔루션을 가능한 한 많이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매 상황마다 적합한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기업은 역시 쉽지 않습니다.

최신 글

원더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