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뜨레의 사회적기업 현장 고민하기 ② ‘이거 좋은 일 맞나요?’

안녕하세요! 원더스의 이뜨레입니다. 이번 글은 사회적기업 시리즈의 두번째 글로, 사업의 역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몽골 경험 하나 열심히 우려먹고 있는 이뜨레

  1. 진짜배기를 찍어내는 법 – 스케일업과 진정성에 대하여
  2. 이거 좋은 일 맞나요? – 사업의 역효과에 대하여
  3. ‘부자가 돼버렸지 뭐야!’ – 사회적기업의 적정 수익에 대하여
  4. 대한민국과 새마을운동 –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대하여
  5. 삶과 죽음 앞에서 – 소셜 미션과 기업의 생존에 대하여

(바뀔 가능성 아주 높음)

이거 좋은 일 맞나요?
-사업의 역효과에 대하여-

국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70년, 전례없는 스케일로 진행된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값진 교훈이 있습니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업이라도 그 이면에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종종 발생합니다. 국제개발을 하는 사람은 지원의 역효과에 대해 늘 고려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도움을 주더라도 구조적인 문제를 심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현장에서 사회적기업 운영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역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퍼주면 안 되는 이유, 퍼줘야 하는 경우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문제는 수혜자의 의존성 강화입니다. 공짜로 물건을 받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한두 번은 필요한 물품을 줄 수 있지만, 받는 것이 당연해지면 자생의 의지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궁핍함을 극복하고 험난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대가 없는 무상지원은 금기시됩니다.

물론 긴급구호 상황에서와 같이 공짜로 줘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전쟁으로부터 피난 나와 당장 굶어죽게 생긴 사람에게 의존성 운운할 수 없습니다. 즉각적 지원이 없으면 살 수 없을 때, 즉, 지원의 중요도와 긴급성이 모두 높은 상황에서는 무상으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인도적 지원으로 분류됩니다. 우리가 하려는 사회적기업을 통한 개발과는 엄중히 구별됩니다.

전략적인 중간지대가 있습니다. 공짜로 나눠줄 수는 없고 제값을 받자니 안 팔릴 경우,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구매의 장벽을 낮출 수 있습니다. 다른 재원을 통해 비용의 일부를 충당한다면 가격을 낮춰서 더 넓은 층의 고객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보조금이나 국제개발 지원금, 임팩트 투자 등 사회적기업에게 열려있는 통로들을 열심히 찾아서 활용합시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저는 몽골의 사회적기업에서 일했습니다. 저희도 몽골 사업 초기에 전략적 세팅이 부족하였을 때는 무료로 난방 제품을 보급한 적이 있습니다. 빠른 시간에 보급목표를 달성하려면 제품을 뿌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비용은 외부기금을 따서 충당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대가 없이 가져간 배급된 제품들은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난로 사용 방법을 조율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깔고 앉는 의자로 제품을 쓰는 경우도 봤습니다.

보조금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사람들이 구매를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판매는 배급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일이었습니다.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을 설득해서 돈을 내게 하는 일은 국제개발의 업무 기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케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의 미숙함 때문에 현장 판매직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현장은 마케팅에 대한 전문성을 필요로 했습니다.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어렵다

보이지 않는 위협

누군가 우리를 이용해서 지나친 이득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업에 틀어박히지 말고 둘러싼 현지의 역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개발협력 현장에는 여러 층위의 권력이, 작게는 동네의 이권에서 크게는 정치 세력까지 복잡다단하게 작용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외부자로서는 간과하기 쉽지만 주민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 권력의 역동입니다.

그런데 외부 프로젝트로 인해서 현지의 권력구조가 강화되거나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권력을 쥐고 있었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익을 과점하려 들 것입니다. 전달되는 자원의 공급책 역할을 선점하거나 경로에 개입할 수도 있고, 사람을 선발할 때 친척이나 지인을 밀어넣는 식으로 불공정하게 선발할 수도 있습니다. 타국에서 파견된 관리자로서 이 역학관계까지 꿰뚫어보기는 어렵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으로부터 정보를 숨기는 일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웃는 얼굴 뒤에서 내 선의가 사리사욕에 이용당하고 있다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런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도 권력 앞에서는 순둥순둥

이런 경우 썩은 권력을 배제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때로는 기존의 구조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익을 챙기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생리입니다. 대책도 없이 판을 엎는다면 업무는 업무대로 힘들고 물 밑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부상하는 혼란이 닥칠지 모릅니다. 기존 구조를 어느 정도는 용인하되, 나름의 공정성을 갖고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을 하며 현지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파견나가있던 무렵, 몽골은 정치적인 경합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전통의 인민당과 개방을 추구하는 민주당이 정권을 놓고 비등하게 공방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가 생산하던 제품을 스스로의 치적으로 도용해 홍보한 경우를 몇 차례 발견했습니다. 처음 보는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정정 기사를 내보내서 사실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도(province)의 8개 마을에 시범적으로 제품을 보급하는데, 파트너인 도청 측에서 자신의 정당이 집권한 마을로만 8개를 시범사업장으로 선정해온 적이 있습니다. 두 곳을 상대 정당 측 마을로 교체하도록 설득하고서야 보급을 진행했습니다. 저희의 노력이 어느 한 정당의 실적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일뿐더러 한쪽 세력과 지나치게 친한 것처럼 보이면 혹여 정권이 바뀔 경우 사업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현지 생태계에 대한 존중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현지의 경쟁구도입니다.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내가 사업을 펼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봅니다. 저희가 기계를 도입해 연통의 생산을 자동화하자, 손으로 연통을 만들던 사람들이 어려워졌습니다.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공짜로 물건을 뿌린다면 현지에서 자라나야 할 풀뿌리 사업가들은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상공인의 경영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무료 보급을 금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사실 사회 혁신에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의 도태까지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없습니다. 비록 누군가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에 끼치는 편익이 월등하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피해 입을 수십 가구를 걱정해서 수만 가구에게 갈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일 것입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는 사회를 혁신하는 일에 집중하고, 뒤쳐진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역할 배분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해자는 피해자입니다. 모든 손실이 보상되지 않습니다. 좋은 일하러 갔는데 나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그들이 변화에 적응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할 뿐

뚜렷한 해답이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제품의 가격은 어디까지 낮추는 것이 적정할까요. 누군가가 우리 사업을 통해 사익을 챙기려 할 경우, 넘어서 안되는 선은 어디일까요. 경쟁자에게 끼치는 피해는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도 되는걸까요. 그냥 눈감고 모르는 채로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겠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사회적기업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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