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할수있다는 의지는 아무렇게나 생기지 않는다.


산길을 하도 오래와서 그런지 이런 공터가 생경하다.

폰통(Phonthong) 디스트릭은 우리로 따지면 군 소재지 정도 된다.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주의 산간지역인데 여기에는 소수민족인 몽족, 까무족, 라오룽족등이 주로 살고 있다. 원래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살지 않고 산 속에 흩어져서 살았다. 정부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 마을로 발전할 수 있기에 2009년부터 산간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을 도로변으로 한데 모아 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도시중 하나가 바로 이곳 폰통이다. 폰통은 다른 마을과는 달리 가구수가 많고 사람도 많았다. 그래봤자 얼마 되지는 않지만 2-300가구는 족히 살기 때문에 이 근처 42개 마을을 관할하는 관공서와 진료소도 있고 자그마하게 시장도 있었다. 우리는 시장 옆에 있는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양념을 비닐봉투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십수 명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각자 맡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주먹만한 생강을 칼로 얇게 잘라내고 있었고 건물 밖에서는 군불을 피워놓고 무쇠로 된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믹서에 고추를 갈아서 커다란 통에 옮겨 담고 있었다. 이런 것과는 다르게 건물 내부의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스크린과 테이블이 있었는데 화면에는 영어로 된 PPT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노트북으로 서류작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몇몇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분들은 루앙프라방에 수파노봉 대학교 농과대 교수님들이야. 어제부터 여기 여성연맹 회원들이랑 재료 가공하고 반찬 만드는 방법 교육하는거고.”

이반장님은 입구로 들어오면서 설명을 했다. 여성들 사이에는 소녀들과 아이들도 뒤섞여 있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그릇에 있는 양념을 작은 봉투로 담고 있었다. 


재료 준비에 신난 교수님과 교육 참가자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생소한지 카메라를 들이대자 다들 부끄러운지 말수가 줄어들었다. 교육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걸 수도 있다. 가까이 가서 지금 봉투에 담는게 뭐냐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물었다. 그 분들은 라오스 말로 나한테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양념을 덜어 입에 넣어 주었다. 

“음? 맛있네!” 라는 표정으로 메세지를 보내주니 작업하던 분들이 신이나서 웃는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것이 밥 반찬하면 딱 좋을 것 같다. 

“반장님 이거 반찬인가봐요?”

“응, 그거 조미료 넣어서 만드는거여.”


갈랑가를 얇게 잘라내고 있다. 

한데 모아 양념을 만드는 모습. 나무를 직접 땐다.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라오스 생강인 ‘갈랑가’와 고추 그리고 여러 재료를 넣고 끓여 만드는 일종의 반찬이었다. 많이 만들어서 작게 나눠담고 이것을 시장에 내다 판다고 한다. 커다란 대야에 들어있던 양념은 어느새 작은 비닐 봉투안에 모두 나눠져 있었다. 한 분이 커다란 주걱으로 바닥을 석석 긁어 한 두 봉지를 더 만들어 낸다. 이렇게 일이 한 번 마무리 된다. 사람들은 또 이리저리 다른 일을 하기위해 흩어졌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고추를 믹서에 넣고 갈고 있었다. 믹서는 두 개가 있었는데 한 번 갈면 옆으로 옮겨 한 번을 더 갈았다. 고추씨까지 한꺼번에 넣고 갈았는데 이렇게 갈아서 다른 재료들과 섞는 것이다. 

촬영을 하는 내내 녹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끊임없이 믹서로 고추를 갈고 계셨는데 중간중간 사람들이 모이면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설명을 하기도 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일 하는 움직임이나 태도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아무래도 한가닥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공무원이면서 지역 여성 연맹의 리더였다. 

“저 분이 예전부터 소득 증대 사업 하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데 얼마전엔 그걸 뛰어 넘었어. 판로 개척한다고 페이스북으로 카이펜(민물김)을 직거래로 판매하는거야. 여기는 인프라 자체가 없으니까 한국에서 쉽게쉽게 물류 주고 받는거랑은 완전 틀리거든. 여기 폰통에서.” 반장님은 대단한 도전이라며 칭찬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게 다 돈이 없으니까 하는건데 지금 교육하는거도 보면 반찬 만들어서 소득 올릴려고 교육받고 있잖아. 쌀농사 짓는거는 자급자족 하는거지 그거로는 현금을 만들기가 어려운거고 달리 할 것도 없고 판매할 수 있는 시장도 없으니까 농작물을 심어도 어디다 내다 팔 수도 없는거야. 시장이 먼게 엄청 큰 마이너스거든. 물리적으로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해서 팔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고.” 

한국 사람이 ‘시장’이라고 하면 마트를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시장은 판로를 의미한다. 정말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동네마다 돌아가며 시장이 열리지만 이 마을에서 자라는 작물은 건너 마을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돈을 주고 살 이유가 없다. 이럴 경우 해결책은 두 가지. 새로운 환금성 농작물을 심어서 판매하는 것, 다른 하나는 농작물을 가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판매하는 것이다. 


산에서 자라는 밭벼

새로운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농작물이 시들거나 병들거나 해충에 노출되거나하는 문제로 돈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생장시키는 것은 어렵기도 어렵거니와 시간이 올래 걸리는 작업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땅과 기후에 맞게 지속적인 테스트를 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므로 농업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렇게 몇 년은 해야 안정적인 농작물 생산이 가능하다. 


마을은 보통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농작물을 싣고 달릴 차도 없을뿐더러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직접 판매가 어렵다면 중간 도매상이 일명 밭떼기를 하게 되는데 제값들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나마도 업자들이 오지 않으면 그해 지은 농사는 아무도 사가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앞으로 가볼 커피 농가도 마찬가지의 일을 겪고 있었다. 장난치지 않는 유통망이 절실한 것이다. 이러한 생산과 유통에 관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곳 여성 연맹의 회원들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은 나무 껍데기로 아로마 오일을 채취한다. 

현재 서울대에서 유학중이신 교수님

한쪽에서는 뭔지 모를 나무가 어지렵게 쌓여있었는데 나무 껍질을 벗겨서 물에 불려 삶고 있었다. 교수님 중 한 분이 껍질을 벗겨서 향을 맡게 해 주었는데 나무 껍데기 향기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향기가 좋아서 아로마 오일로 가공한다고 한다. 작은 병으로 포장한 생산품까지 진열해 놓았길래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아로마 오일이었다. 이 외에도 지역에서 나오는 다양한 특산품을 이용해 오일을 만들어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로마 오일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아지고 있어 좋은 소득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발표 준비중인 군수님과 간부들 

심지어 라오스 티비에 방영되기도 했다.

폰통 지역 군수님. 교육에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계셨다. 
함께간 분들(이반장님, 오팀장님, 짠) 과 수파노봉 대학교 농과대 교수님들

어제부터 줄기차게 진행된 교육은 카이펜(민물김) 포장 방법, 갈랑가 생강을 활용한 양념 제조, 지역 생산품을 활용한 아로마 오일 제조법까지 다양했다. 한국과 라오스, 그리고 현지 농과 대학 교수님들까지 어우러진 교육이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다음날 라오스 뉴스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비중있는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교육을 마친 다음에는 성과 발표회가 있었고 폰통 군수님도 함께 참석하여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30분이 넘도록 열변을 토했다. 


교육이 마무리 되고 설문지 작성중

글을 모르는 분들은 직접 작성을 도와드리고 있다. 

교육을 마무리 한 사람들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글을 모르는 분들은 직접 작성을 도와주기도 했다.할 수 있다는 의지는 아무렇게나 생기지 않는다.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거나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때, 여러 번의 사소한 시도들이 성과를 만들어 다음을 기약할 에너지가 생겼을 때 비로소 아주 조금 발현되는 법이다. 환경이 열악해서, 상황이 좋지 못해서, 딱 봐도 안 될 것 같아서 멈춰선다면 그 바로 위 언덕에서 맞이할 새로운 국면을 놓칠수도 있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힘을 내볼만하다. 

그래서 우리도 이 걸음을 쉴 수가 없다. 이 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도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고 지원이 빵빵해서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국면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보고싶은 것 뿐이다. 

교육이 마무리 되고 교수님들은 내일 또 다른 교육이 있다고 하여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는다고 하였다. 우리도 내일 농림부 관계자와 고급 향수 재료로 사용되는 벤조인 원산지를 방문하기로 하여 하룻밤을 묵어야 했으므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밤에는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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