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광으로는 볼 수 없는 루앙프라방 북부 산간지방

라오스 수도는 비엔티안이지만 우리가 향한 곳은 루앙프라방. 비엔티안에서 약 350km 떨어진 북부에 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에서도 관광 휴양지로 유명하며 유럽 사람들이 장기 휴가를 보내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 비수기인 8월이었지만 우리는 관광 온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은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로 작았고 작은만큼 수속도 금방 끝났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오렌지색 불빛과 후텁지근한 열기가 나를 맞이했다. 한국이 더 더우려나. 

루앙프라방의 아침, 구름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짠은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짠은 키가 작고 단단하게 생긴 몽족 출신 직원인데 이반장님에게 이미 말수가 적고 진지한 편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실 그것 말고는 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살짝 어색한 인사를 하고 짐을 실은 후 뒷자리에 앉았다. 반장님은 차에 문제가 생겼는지 뭐가 잘 안 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짠과 주고받으며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바로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었기에 시동을 걸고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모두의 관심이 차 상태에 쏠려있었다. 차는 정상적으로 잘 달리는 듯 문제없어 보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국적인 라오스 정경에 관심을 빼앗겼다. 도로를 따라 눈을 돌려도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카트만두를 거쳐 포카라에 갔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낡은 집과 물건들이 도로를 따라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 이것저것 모여있어도 헝클어져 보이지 않고 잘 어우러지는 인상을 받았는데 여기 루앙프라방이 그랬다. 산골짜기를 들어가도, 조그만 마을을 가도 흙탕길이라는 걸 제외하면 하나같이 단정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돌담에 풀은 자라도 쓰레기나 오물은 거의 없었다. (아, 산 골짜기 도로에 소똥…)

루앙프라방의 분위기 좋은 식당과 상점들.은 시간이 늦어 거의 못 보았다.

짠을 집에 바래다주고 숙소로 짐을 옮긴 후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왔다. 루앙프라방은 작은 도시다. 주요 도로를 따라 반나절 천천히 걸으면 중요한 포인트는 다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반장님은 이곳에서 1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어디가 좋은지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은 조금 늦었지만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떤 인테리어 좋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라오스 전통 느낌의 일반 식당이 아닌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주변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맥주를 마시는 유럽 사람들, 그리고 몇몇 커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볶음밥과 샐러드, 그 외 음식을 시켰다. 뭘 먹을지 확정을 짓자 기분도 긴장도 확 풀리면서 그제야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중하며 일을 하다가 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탔는데 지금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한 식당에 앉아 느긋하게 저녁을 먹으며 내일 무슨 스케줄로 움직 일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약간은 어색했다. 좋기는 좋은데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은 느낌. 관광객이 많아 나도 덩달아 들뜨는 기분이었다. 루앙프라방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숙소에서 식당으로 걸어오는 길도 좋았다. 깨끗하고 새로우면서도 여기서는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긴 것이다. 라오스의 첫인상이 좋았다. 

장시간 운전 후 스트레칭을 하는 이반장님과 휴식 중인 무리들

다음날 새벽, 우리는 새벽같이 루앙프라방을 출발해서 베트남 국경 근처인 ‘폰통’ 디스트릭으로 향했다. 폰통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모레 복귀하는 일정이다. 산악지역 오프로드도 달린다고 하는데 차가 수동이라 유일하게 이반장님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수동 운전을 해볼까 싶어 차를 가지고 작은 공터를 한 바퀴 돌았는데 시동을 네 번이나 꺼먹었다. 평소에 운전을 좋아하고 집에서도 오프로드 레이싱 게임을 즐겨하지만 게임에서도 오토로 하는 걸. 운전은 어쩔 수 없이 이 반장님이 하시는 걸로 정해졌다. 그렇고 홀로 모든 일정을 소화.

오프로드에 두들겨 맞고 휴식 중인 무리들

편도 8시간이 걸린다고 했나. 편도 말이다. 산 길이라고는 들었어도 우리가 가야할 곳이 편도 8시간 산 길을 가야한다는 말에 나는 “에이 장난이겠지” 싶었다. 산간지방이라고 하니 막연하게 아스팔트가 깔린 강원도의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연상했는데 붉은색 골이 깊게 파인 흙탕 길일 줄은 몰랐다. 구덩이에 바퀴가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도로가 좋지 않은 동남아 여러 지역을 오랜 세월 다녔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라오스의 산길은 다녀본 중 최고 난이도였다. 시내 근처는 괜찮았지만 루앙프라방에서 멀어질수록 도로 사정은 안 좋아졌다. 처음엔 그나마 아스팔트였는데 갈수록 아스팔트가 파이고 부서진 곳들이 많이 나왔다. 산이 많다보니 절벽처럼 산 옆을 툭 잘라서 바로 아래 도로를 만든 곳도 많았다. 이런 곳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기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해서 도로가 끊기는 일도 자주 있다고 한다. 확실히 인프라 쪽은 (특히 도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덮개를 하지 않았다.

라오스는 중국과 베트남, 태국, 미얀마에서도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 때문에 도로를 지나는 동안 중국에서 들어온 대형 덤프트럭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이 라오스에 투자를 활발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많은 트럭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딱 봐도 과적 차량인데 2차선 도로 위를 무법자처럼 달리고 있었다. 사실 마땅한 제제 수단도 없을 거라 생각됐다. 2차선 도로라서 큰 트럭이 느리게 달리면 반대편에 오는 차량을 힐끔힐끔 확인하고 앞지르기를 해야 한다. 라오스뿐 아니라 교통 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다. 심지어 중앙선이 실선인 곳도 있다. 우리는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렸다. 

농키아우에 구름이 내려앉은 모습

카오삐약. 베트남식 쌀국수인데 면발이 쫄깃쫄깃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한참을 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농키아우’라는 곳에서 잠깐 이른 점심 식사를 했다. 농키아우는 메콩강 상류에 위치한 남우강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마을인데 여기도 외국인들이 찾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마을이 생각보다 작았는데 실제로 길거리를 서성대는 사람들은 현지인 반 유럽인 반이었다. 왜 이런 작은 마을을 찾는 것인지 나 같은 초보 여행자는 이해가 불가능했다. 이 곳은 마을 위아래로 가로질러 남우강이 흐르고 강 옆으로는 둥그렇고 큰 산이 이쪽저쪽으로 에워싸고 있어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절경이었다. 우리는 도로 옆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시켰고 나는 라오스식 쌀국수인 카오삐약을 먹었다. 쫄깃한 면발을 한 입 먹으니 뭔가 클래스가 다른 느낌. 국물도 고기도 면발도 상당히 좋았다. 쫄깃쫄깃한 면발이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카오삐약은 동남아에서 많이 나는 ‘카사바’를 재로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반장님은 여기 별로라며. 

이 때 바나나를 구입하지 못한 오 팀장님이 나중 나중에 해주신 말, “라오스 바나나가 맛있네요.”

오 팀장님은 식당 밖에 있던 바나나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차에 올랐는데 예전 근무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바나나 인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생전 바나나 인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한국 토박이라 그게 뭐냐고 물으니 집 앞 뒤로 바나나 나무들이 있기 때문에 바나나 한 두 개 주고받는 게 별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네 ‘너 고구마 좀 먹고 갈래’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바나나와 인심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고 서서히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지면 집중해서 운전해야 한다. (물론 이 반장님이)

평평한 흙바닥에 이리저리 돌멩이들이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 길 한가운데는 콸콸콸 쏟아지는 빗물이 큰 도랑을 만들어 도로 이곳저곳을 깊게 후벼놓았다. 이런 오프로드에서 아무리 바퀴 큰 4륜 구동 자동차라도 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 날 처음 알았다. 아니 이렇게 리얼한 오프로드는 사실 처음이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데도 좀처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심한 곳도 있고 평평한 곳도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리 안전하게 달린다고 해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우리는 곧 구름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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