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정신

개발협력 현장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에 대한 갈망

기본적으로 몇 시간은 달려야하는 개발협력의 현장

안녕하세요 이반장 (원더스 이성범 대표)입니다. 오늘은 제가 일해 왔던 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 이야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정신에 대해 짤막하게 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십수 년을 개발협력 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항상 저를 갈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실제적으로 변화되는, 그런 지속 가능한 대안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개발협력 현장에서 바라 본 많은 기관의 개발협력 활동은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형태의 지원을 하는 방식이 여전히 주요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성장보다는 후원하는 사람들에 만족감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활동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지역사회를 수동적으로 만들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체력’을 기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여기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다면 개발협력 현장의 활동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10여 년 전 즈음, IDE를 창립한 폴 폴락과 베어풋 칼리지의 벙커로이를 만나면서 사회적기업 방식이 개발협력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혜자가 아니라 생산자나 판매자, 고객이 되는 활동에 금방 매료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새로운 소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적정기술이 소득 창출에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이 융합된 사업 모델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을 통한 개발협력 활동

처음 실행했던 적정기술 사업은 당시 제가 다녔던 굿네이버스에서 진행한 몽골의 난방 보조장치 지세이버(G-saver)사업 입니다. 당시 몽골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해 가축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로 인해 유목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수도 울란바토르 근처로 몰려들어 게르를 설치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도 유연탄을 제대로 땔 수도 없었습니다. 유연탄 값이 너무 비쌌고 이것이 생계를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현지 중심의 사업과 비즈니스 방식의 사업모델을 만들고, 현지에서 효율적으로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몽골에 법인을 만들어 열효율을 극대화한 난방 장치인 지세이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는 저소득층을 직원으로 고용하였으며 생산과 판매 교육을 제공하여 현지에서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낮은 가격으로 보급하였습니다.

지세이버는 유연탄 사용량을 40%가량 절감시켰고 사람들은 생계에 필요한 현금이 확보되는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유연탄 사용이 감소되어 매연 발생이 줄어드는 효과는 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지세이버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시장의 방식이 적용되어 발전되었고, 이로인해 국제개발 분야에서 적정기술을 활용한 사회적기업 의 좋은 사례가 될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수상 가옥에 설치된 태양광 시스템

두 번째 사업은 캄보디아에서 진행됐던 태양광 시스템 사업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전력 공급률이 30% 이하이며 농촌은 대부분 자동차용 배터리를 충전해서 사용하는 식으로 전기를 사용했습니다. 밤에는 등유를 피워 집을 밝혔습니다. 굿네이버스는 현지에 별도 법인을 세우고 현지 주민들에게 적정한 용량(150W~250W)의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을 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태양광 시스템은 유통망을 통해 비즈니스적으로 판매하였습니다.

현지 직원들에게 기술 교육을 하여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저소득층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도록 장기 할부제도 도 시행하였습니다. 전깃불이 들어오니 저녁시간에도 생계 활동이 가능해졌으며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TV를 보면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NGO현장에서 비즈니스 방식으로 일 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만나고 헤쳐나가는 일이 반복 되었습니다.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단순한 방식이 아닌 비즈니스를 만들고 현지인들을 참여시키는 과정은 태양광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부터 마케팅까지 복잡하고 오랜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참여적 비즈니스 방식은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는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라오스 카이펜 생산지에서 버블젯 머신을 시연하고 교육하는 장면

세 번째 사업은 라오스에서 진행된 카이펜(민물김) 고품질화 사업입니다. 라오스 북부의 강에서 채취되는 민물김을 고품질 제품으로 생산하여 여성 생산자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사업입니다. 처음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ODA 사업으로 (사)나눔과기술이 사업을 발굴하여 실행하였고 적정한 수준의 기술과 장비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업 후반부에 라오스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LKSTC)의 센터장을 맡아 활동하며, 지역 특산품으로 소비되던 카이펜을 더 좋은 품질로 만들어 유통할 수 있도록 생산 공정과 주요 장비를 제작하여 공동 생산이 가능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이 후 사회적경제분야 개발협력 활동을 전문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소셜벤처 원더스 인터내셔널을 창립하였습니다. 라오스를 중심으로 커피, 사차인치, 흑생강 등의 농업특산물의 발굴하여 소수민족마을과 협업하는 비즈니스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라오스 카이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도 계속하였고, 여성 생산자 그룹의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판매와 마케팅을 통해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코이카의 지원으로 기존 마을의 판매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마을의 생산자 그룹을 선정하여 사업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기존의 카이펜 여성 생산자 그룹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전히 보다 나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원더스와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비즈니스를 발전시켜 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정신

기업가정신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참여적 방법을 통해 현장에 적합한 해결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사회연대경제, 사회적기업 방식의 활동을 위주로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며 일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첫째는 현지인과의 동등한 협력관계였습니다. 사업기획 부터 실행 전반의 활동은 현장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현지인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현지인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첫번째 과정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충분한 기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기회를 창출하는 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 활동은 장기간의 투입이 필요합니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현지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현장을 중심으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일해야 합니다. 개발협력 전문가나 사회적 기업가들의 전문적인 활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기술 전문가들의 충분한 현장 이해도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이 현지 주민과 진정성 있는 교류를 진행하며 참여적인 방식으로 기술과 사업을 개발할 수 있어야 현장에 적합한 해결책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기술이나 프로젝트의 논리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만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모든 것들이 잘 작동한다 해도 현장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다고 무기력하거나 의욕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기업가 정신을 ‘기회를 발견하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혁신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제가 만난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단지 환경이 좋지 않고 가난할 뿐이었습니다.

원더스는 이들의 기업가정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기존의 자본 중심의 시장에 맞서 싸울 힘을 갖출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장을 다니면서도 드립 커피의 낭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는 지금도 라오스 오지 숲속 마을을 다니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정신을 통해 마을공동체의 자립을 이루는 과정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라오스 소수 민족들이 자신들의 문제보다 그 속에 있는 강점을 발견하여 소득수단을 만들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마을의 역량과 연대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모습을 볼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묘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 기쁨 때문에 개발협력현장에서의 거친 하루 하루를 즐기며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문제보다는 강점을 중심으로 일 하는 것, 지역사회의 역량을 높이고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일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과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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