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근데 라오스엔 왜 갑니까?

라오스를 가는 일정은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어서 일정이 다가와도 그다지 흥분되지는 않았다. 일로 가는 해외 일정은 언제나 일의 연장일 뿐 쉬는 시간으로 삼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캄보디아도 필리핀도 그랬다. 여유 시간이라도 조금 날라치면 사진이라도 찍으러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것뿐이었다. 이번 라오스 일정은 오래전에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어서 뭘 해야 할지 이미 결정되어있는 상태였다. 할 일이란 것은 사진 촬영과 인터뷰, 콘텐츠 제작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영상을 표현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지만 결국 현장에서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디

애초에 나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 하던 일도 바빠서 라오스 일정이 다 되어서야 하던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몇 가지 촬영 장비와 옷가지를 단순하게 꾸렸다. 단순한 짐이었지만 장비가 많아 무거운 가방이 세 개나 되었다. 새벽에 집을 나왔는데 우산을 써야 할 만큼 비가 내렸다. 

시간에 맞춰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린 후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밤을 새우고 나온 탓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딱 맞게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이 짐을 실어주어 편하게 탑승한 후 자리에 앉아 곧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새벽 시간, 버스는 한 시간쯤 달려 인천 공항 1 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공항

공항은 어느 시간에 가든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했는데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 여섯 시 반에 도착했는데 출국장엔 이미 티켓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동행할 이 과 짐을 나눌 것이 있어 기다려야 했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미리 예약해둔 100달러를 은행 창구에서 찾고 버거킹에 들러 와퍼주니어 세트를 먹었다. 이 반장님과 비행기는 달랐지만 거의 비슷한 시간대였기 때문에 하노이 도착 시간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불어 오 팀장님은 2 터미널에서 비슷한 시각에 하노이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에서 만나 대기를 하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곧 반장님이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는 반장님과 짐을 배분하고 보딩 패스를 받았지만 반장님은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어 내가 먼저 출국 심사를 받았다. 밤을 새우고 왔기에 피곤하고 멍한 상태로 잠시 대기를 하다가 베트남 항공 비행기를 타고 먼저 출국하였다. 

요즘 비행기 날개는 다 이렇게 휘었..

이륙한 후에는 좌석에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마흔을 넘어 밤을 새우니 무얼 할 의지가 전혀 나질 않았다. 이대로 있다 기내식이 나오면 그거나 먹고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이번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해보니 머리가 움직이지 않아 글로 써 볼 필요가 있었다. 아이패드를 꺼내 이리저리 생각을 펼치다 보니 밥도 대충 먹고 의외로 생각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가끔 창밖의 구름을 보다가 생각에 잠기다가를 반복한 후 집중력이 떨어지자 곧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에도 남는 시간을 되도록 용납할 수 없었던 탓에 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언제나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메모장에는 언제나 생각할 주제들을 적어두었다. 대부분의 주제는 사업에 관한 것이었고 가끔 나중에 쓰자라는 생각으로 적어둔 짧은 일상의 질문 같은 것이었다. 방금도 이번 라오스 일에 대해서 생각할 내용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가 생각을 풀어본 것이었다. 지금처럼 기력이 딸리면 곧바로 취침을 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하노이 공항 환승하는 곳

하노이 공항에 내려 곧장 환승 게이트로 갔다. 여기서 이 반장님과 오 팀장님과 합류를 하기 위함이다. 이 조합은 이미 작년 필리핀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던 조합이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조직에 있었지만 이제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으로 모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환승 게이트 근처의 대형 쌀 국숫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역시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에서 신나게 잤기 때문에 지금처럼 남는 시간이 생기자 다시 생각할 기력이 생겼다. 이것은 병에 가깝다. 내 머리는 좀처럼 쉴 생각이 없는 것 같길래 펼쳐놓았던 아이패드를 덮고 강제적 휴식을 주고자 주변을 잠시 돌아보았다. 한국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옆 의자에서 세상모르고 자던 사람은 스피커로 자기 이름이 몇 번이나 불리는 줄도 모르다가 그를 애타게 찾아 돌아다니던 직원이 흔들어 깨운 후 이름을 확인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진지한 목소리와 눈썹 모양으로 일깨워 준 후 그를 데리고 황급히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 팀장님과 반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국에서 각기 다른 비행기를 타고 와서 같은 환승 구역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첫 단체사진. 왼쪽이 오팀장님, 가운데가 나, 오른쪽이 이반장님

이 반장님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콧수염을 길렀다. 한국에서는 콧수염 하면 김흥국이 연상되어 다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나마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지저분하지 않고 스타일 있게 관리했다. 물론 반장님과 나만의 생각일 것이다. 반장님은 굿네이버스에서 캄보디아 지부장으로 일을 하다가 퇴직한 후 나와서 시장 기반의 개발협력에 뜻이 있어 몇몇 사람들과 함께 단체를 설립할 예정으로 이미 작년부터 라오스 현지 조사를 시작하였다. 이번에 방문하는 것은 현재 진행하는 사업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관련한 콘텐츠들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기존에 만들어지던 개발 협력 콘텐츠들과 조금은 다른 방향성을 잡아보기 위해서다. 내가 주로 할 일이 바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인데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재밌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려는 계획으로 나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오 팀장님은 필리핀 KCOC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다. 이번에는 라오스 적정기술 센터의 단기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게 되어 함께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미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활동을 했었고 지속적으로 개발 협력 쪽으로 경력이 있어서 KCOC 일을 마무리 하고 잠깐 한국에 귀국하였다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꼬마 프로펠러 비행기 앞에서

이렇게 하노이 공항에 모인 셋은 저녁 비행기 시간이 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섯 시간가량 대기하고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탑승했다. 프로펠러가 달린 라오 항공의 작은 비행기가 대기 중이었는데 이 작은 비행기는 뒤쪽으로 들어가는데 짐도 화물칸에 직접 실어야 했고 탑승하는 인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반장님은 하노이에서 연계되는 비행기의 경우 베트남 항공과 병행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큰 비행기가 들어갈 때도, 지금처럼 작은 비행기가 들어갈 때도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불편함 없이 그렇게 한 시간을 날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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